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웨스 언셀드 (문단 편집) == 일생 == 1946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아버지 찰스 도시 언셀드(1915~1980)와 어머니 코넬리아 시셀(1917~1989) 사이에서 9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권투선수, [[니그로리그]] 팀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즈'의 야구선수, 건설 노동자 등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언셀드는 세네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밥 멀카히 감독에게 농구 수업을 받으며 켄터키 주 챔피언쉽을 2번이나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은 선수였고(1964년, 1965년), 특히 1964년 결승전에선 버치 비어드[* 1969년 NBA 드래프트에서 10번으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지명된 후 1979년 은퇴 시까지 총 5팀을 거쳤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인 1972년에 올스타로 1번 뽑혔으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몸담던 1974-75 시즌에는 우승을 경험했다. 은퇴 후 1980년대에는 MSG 네트워크 해설위원으로서 뉴욕 닉스의 중계를 담당했고, 1990년에 하워드 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뉴저지 네츠(1994~1996), 모건 주립대학교(2001~2006) 등을 거쳤으나 지도자로서는 두각을 못 드러냈다.]가 이끄는 브리킨리지 고교를 꺾은 바 있다. 이후 루이빌 대학교에 진학한 뒤 버나드 힉맨(1911~2000)[*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의 명장이던 에드가 디들(1895~1970)의 직계 제자로, 1944년부터 23년간 루이빌 대학교의 체육부장 겸 감독으로서 1956년 NIT 우승, 1958년 NCAA 전국대회 4강 진출을 각각 일궈내며 옆동네 켄터키 대학교의 명장 아돌프 러프(1901~1977)와 쌍벽을 이뤘다. 언셀드와 비어드 외에 찰리 타이라, 웨이드 휴스턴(전 테네시 대학교 감독, 앨런 휴스턴의 부친) 등을 발굴/육성했고, 특히 웨이드 휴스턴은 켄터키 주내 대학들 중에서 처음 영입한 흑인 선수 2명 중 하나였다. 1967년에는 오른팔이던 존 드로모 코치에게 감독직을 맡긴 뒤, 1973년까지 6년 더 체육부장직에 머무르며 훗날 그보다 더한 명장이 될 데니 크럼(1937~2023, 전 UCLA 코치)을 감독으로 발탁했다.]과 존 드로모(1916~1992) 두 감독에게 지도를 받으며 후배 비어드와 다시 만나 1967 및 1968년에 두 차례 NCAA 전국대회에서 16강을 각각 찍었고, 이 공로로 올 아메리칸까지 2년 연속 선발됐다. 언셀드는 대학 졸업과 함께 ABA의 고향 팀 켄터키 콜로넬즈와 NBA의 볼티모어 불리츠에 동시에 지명을 받았다. 언셀드는 NBA를 선택했고 첫 해부터 신인왕 + 시즌 MVP[* 다만 이때 MVP는 [[윌리스 리드]]가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스탯에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 언셀드가 신인으로 대단한 활약을 했기 때문에 그 임팩트로 수상한 것.]라는 대활약을 하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게 된다. 이후 [[얼 먼로]]가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언셀드는 앨빈 헤이즈와 함께 팀의 미래를 맡게 되었고, 당대 최고수준의 빅맨 듀오였던 둘의 시너지 효과로 70년대~80년대초 불리츠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는 총 4번의 파이널 진출, 1번의 파이널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8년 파이널 때 팀의 우승에 기여한 공로로 MVP를 받았다. 1981년에 선수 은퇴 후 팀은 그를 기리기 위해 등번호 41번을 영구 결번시켰다. 불리츠-위저즈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언셀드의 시대와 그 이외'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랜차이즈에서 커다란 존재감을 가진 선수였고, 구단 역사상 시즌 MVP와 Finals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1988년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은퇴 이후 그는 친정팀의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1987년부터 어시스턴트 코치가 됐고, 1988년 2월에 케빈 로커리 감독이 쫓겨나자 감독으로 복귀하여 기술을 중시하는 심플한 농구를 추구했으나, 당시 팀 플레이 추세와 역행하는 개인 플레이 중심의 옛날식 플레이만 선보인 탓에 임기 6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은 1회에 그쳤다. 그 1회마저도 감독대행 때 한 것. 1993-94 시즌을 끝으로 팀에 염증을 느낀 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가 1994년 11월에 부사장으로 돌아온 후 하비 그랜트, 로드 스트릭랜드 등을 영입하거나 사들여 1996/97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고, 1996년에 단장을 겸했다가 2002-03 시즌을 끝으로 팀과 인연을 끝냈다. 2006년에는 미국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으며, 2020년 6월 2일 화요일에 폐렴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https://apnews.com/b519bbf1d7ffecf360372f4ca69c1b2a|AP통신 영문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